
귀스타브 꾸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오르낭의 장례식 1849-1850 년 캔버스에 유화 313x664 오르쎄박물관
1849년 여름에 그린 이 작품은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대 부분의 예술가들이 기피하는 죽음의 이야기 그것도 어느 무명인사의 장례식을 그리고 있다. 일단의 무리들이 가운데 관이 들어갈 무덤으로 향하고 있는 엄숙한 군중의 무리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으로 영웅들이 아닌 무명인사의 장례식에 초대된 일반 무명인사들로 대체 했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역사화를 일상의 사소한 일로 바꾸어 놓았다.
맨 왼쪽 끝에 위치한 자기 할아버지 장 앙트와느 우도의 집 헛간에서 오르낭의 주민들을 차례로 불러서 포즈를 취하게 했다. 자기 고향 마을 프랑쉬 꽁떼의 오르낭의 농민들과 부르주와들을 한 군데 모아 놓은 작품이다.
1850년 싸롱전에 출품되었을 때 비평가들과 친구들도 저속하고 추한 작품으로 혹평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들의 실제적인 위치를 보여 주고 있다. 진실성과 장소의 사실성으로 사실주의의 선포로 간주되었다. 화가는 전통이 보여 주는 천국과 지옥이나 하늘의 이야기 또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없애고 단순한 성직자와 십자가만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같은 화폭에 부르주와와 농민들을 함께 집어 넣었다. 전통의 역사화에서 사용하던 기념비적 양상을 보여 주는 거대한 크기의 화폭을 일상의 장르에 사용하여 새로운 기운의 조용하고 장엄한 엄숙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꾸르베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반하고 낭만주의의 장례식을 그려낸다. 1861년 꾸르베는 “사실주의는 이상의 거부이며 민주적 예술이라고 선언한다”
새로운 스타일은 우리의 시선을 따갑게 한다. 강한 붉은 색과 청동오리의 푸른색이 검은색과 회색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멘 앞에 관이 들어갈 무덤 구덩이는 입을 벌리고 관객들을 부르고 있다. 벌린 구덩이 옆에는 우리의 조상 아담의 해골이 파헤쳐져 있다.
보들레르의 1863년의 글에서는 회화는 점점 꿈꾸는 것을 그리지 않고 보이는 것을 그리고 있다며 현대 회화를 옹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꾸르베의 사실주의에 무조건적인 옹호를 의미한는 것은 아니었다. 꾸르베는 “영원한것,불변하는것” 상상의 부분과 초 자연적인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세상의 기원 꾸르베 (L’origine du Monde)
성기의 음모가 묘사 되었다. 19세기 털은 예술을 포르노로 바꾸고 포르노를 예술로 바꾸었다.
이 그림은 꾸르베의 대표작으로 여인의 가랑이 사이를 넓게 벌린 포즈를 거기다가 털이 덮여 있는 포즈를 잡았다. 야만인이나 동물로 돌아가고자 하는 남성 삼손과 같이 힘만 있는 남성이나 자기의 본능에만 충실하고자 하는 남성은 털을 자라게 내버려 둔다,자기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규범에 가까이 가는 자는 털을 깎는다.군인들과 사제들은 털을 깎는다.여인에게 털은 동물적이며 여성 성 위에 있는 남성이다. 이 그림은 남성에게 이상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어떤 이들은 매끄러운 틈새를 꿈꾸고 또 다른 이들은 숲속을 헤메고 싶어한다.
이 작품은 1831년생의 터어키인 카릴 베이의 소장품으로 자기 집 싸롱에 걸었던 작품이다. 카릴 베이의 주문에 따라 그린 작품으로 카릴 베이의 애인을 모델로 그렸다.
그는 생페테스부르에서 러시아 대사를 지냈으며 어린 시절 파리에서 공부한 연고로 파리로 옮겨 온다. 많은 그림을 소장했으며 나중에 엥그르의 터키탕도 이 애호가가 구입했었다.
작품은 휘장에 싸여 있었고 초대 받은 몇 몇 친구에게만 공개 되었었다고 한다.
화가의 아뜰리에 1855년 캔버스유화 361 X 598 오르쎄박물관
그 인생에서나 예술속에서 항상 공격적이고 혁명적인 꾸르베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신봉했다. 그는 사실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이 그림은 화가의 파리 아틀리에를 그리고 있다. 그림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운데는 캔버스 앞에 화가와 그 뒤로 회화의 비유로 자기 예술을 사모하는 그리고 동시에 예술적 영감을 주는 누드 모델이 서 있고 그림의 오른 편에는 예술 애호가들,꾸르베 지지자들과 친구들 그 가운데 샹플뢰리,프뤼동,보들레르와 화상 브뤼아스가 있고 왼편으로는 술 주정뱅이나 밀렵꾼 등 당대 하층민들을 그려 넣었다.
왼편의 긴 수염과 염소는 나폴레옹 3세를 연상케 하는데 당시 엄격한 검열을 피해 잘 표현되었다. 확신범으로 공화주의자인 꾸르베는 프랑스 제국의 정치를 혐오했다.